박은신 개인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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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빛그림 작성일24-07-13 12:58 조회83회 댓글0건본문
장자의 무용지용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본성대로 살며 그 자체로 쓸모 있는 삶의 무위! 이를 추구하는 지인이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에 오늘, 그러나 마지막 날 겨우 갤러리를 찾아갔다. 30대 만나 우주의 기운과 자연의 이치를 나눌 수 있었던 희귀한 인연이다. 장자를 좋아하는 그녀, 나도 삶의 지혜로 여길 만큼 노자, 장자를 좋아하기에, 그녀의 무용지용에 관한 이야기는 듣고 즐거웠다.
쓰임이 없어서 큰 나무가 되었다는 나무꾼의 말에, 쓸모없어서 남의 손을 타지 않고 본성대로 살 수 있는 이치를 일깨우는 장자의 일갈. 그 나무 밑에서 우리는 쉴 수 있다면서 자신은 쓸모없는 쓰레기는 만들고 싶지 않단다. 그러려면 전시를 더 자주 열라고 했더니, 생산량을 그렇게 따라갈 수 없단다. 연속 전시회를 열어보니 정작 더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내놓을 게 없더라고, 그래서 자신의 속도로 그리고 있다고 했다.
사실 우린 무엇을 하든 말든 영적 존재로서 존귀하다. 무엇을 만들던 말든 그것이 무엇이 되던 말든 우리가 하는 행위에는 우리가 부여한 의미가 작용해서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꾼이 큰 나무를 알아보지 못하듯, 우리 스스로 진정 나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쓰임이 있는 존재임에도 그렇게 보지 못하는 무지의 눈, 깨어나지 않은 감은 눈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차별과 바쁨이 있고 슬픔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녀의 작품은 빛나 보였다. 금박을 썼기 때문이 아니다. 고요함에서 스스로 드러내는 모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꽃잎에 깨달음을 얻은 고양이, 한철 사는 여름벌레에게 더 긴 시간을 알려줄 필요가 없으나, 인간은 유한한 생명에서도 영원을 꿈꾼다. 흘러가는 시간을 떨어지는 동백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꽃과 달라 보일 뿐, 우주의 시간과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세상에 영원함이 없다는 우주와 영원을 28수의 별자리를 배경으로 선인이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한다. 깨어난 존재인 동물이 이를 고요히 본다.
잠깐 몇 달 동안 그녀에게 그림을 배운 적이 있었다. 조각상을 놓고 그리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서양화가 전공이었고 잘 가르치는 친절한 선생이었다. 지금은 더 가르치지 않고 고양이를 옆에 두고 혼자 독방에 박혀서 그림만 그리는 순간이 마냥 행복하단다. 고려 불화를 좋아하는 그녀는 지금은 동양화만 그리고 있다.
그림에 얼굴의 형상은 있지만, 표정은 은은한 여운만 주게 그리고 있다. 형상은 보되 머물지 말라는 부처의 가르침처럼 들렸다. 체력이 안 돼서 그림도 나눠 부분으로 그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마음에는 변함없이 보이지 않은 깊은 ‘소요유’의 세계가 보였다. 여전히 자신은 느리고 천천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 느리면서도 쉬지 않고 하지 않은 듯 해나가면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무위자연의 잔잔한 하늘 향기를 맛본 전시장을 나서면서 다음 전시회가 기다려진다.
박은신 개인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일시: 2024.6.8(sat)~2024.6.15(sat)
시간: am11:00~pm5:00
장소: 갤러리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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